글/1

[리버] 방

파란괴물 2013. 10. 19. 16:45




  숨이 트일 공간이 부족한 방 한켠. 금전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감히 할 불평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불평도 아니었다. 정말로 숨트일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그것을 토로했을 뿐이지 그리하여 자신이 이 방구석을 싫어한다거나 떠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머무른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제 몸뚱아리도 갑갑하게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방은 인간 몸치고도 아주 넓었기에 리버는 그 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 않았다. 트이지 않는 숨도 그리고 꿈도 모두 한 순간일 뿐이다.

  리버는 더욱이 예민해 졌다. 끈질긴 형사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삼류취급을 받음에도 스스로 홈페이지를 내리지 않는, 악착같이 무언가 있다고 믿는 면이 꼭 음모론자 같은 저널리스트다. 엠마는 요 며칠새에 부쩍 너를 찾는 전화 또, 너에 대해 묻는 전화가 많아졌다고 했다. 형사는 아니었고 조금은 맹한 느낌을 주는 저널리스트였다고 했다. 형사는 그렇게 귀엽게 말하는 법을 모른다면서. 엠마의 투를 들어보니 자신이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로 취급되지 않았더라면 학창시절 이야기나 리버의 사생활을 실수인 척 하며 흘려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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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 당신이 줄리앤을 만나봤다면 좋았을텐데."
리스는 겨우 입을 연 참이었다. 돌돌 말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서, 하얗다 못해 회색으로까지 보이는 빈 컨버스처럼 아무것도 없던 음성에 들떠 고개를 위 아래로 까딱거렸다.
"분명 이렇게 말했을 거야. 그렇게 붉은 머리칼을 가진 여자는 또 본적이 없어요, 리스. 그러면 나는 웃겠지. 그게 사실이니까. 너보다도 훨씬 붉고 투명해. 웃음도 시원시원하고. 좋은 여자야."
리버는 그런 그를 보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왜 이 남자는 이렇게 미쳐있는 것일까? 사실 그가 미쳐버린 것인지 미치고 싶은것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리버로서는 그가 이렇게 살기로 택한 것이 옳다고도 틀리다고도 말 할 수 없었다. 원래 말 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놔두기만 해야 한다면 우리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멈춰야만 할 것이다. 현명한 자라면 알의 껍질과 막을 찢어 내지 않고도 제 뜻을 그 안의 생명에게 전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 확신이 없다. 리버는 앉은 채로 그네를 타듯이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별로, 믿기지는 않네요."
리버는 곳곳에 묻어 있는 몸부림의 흔적을 보며 말했다. 리버는 먼저 리스의 눈을 바라보는 일이 적었다. 오히려 리스가 리버의 눈으로 다가왔다. 그럴때 마다 리버는 참, 우스운 일이지. 하고 생각했다.
"왜?"
리스가 어깨를 격하게 흔들었다. 분명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을 행동이었을 것이다. 리스는 제멋대로 움직인 어깨를 본다.
"그 여자를 줄리앤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리고 다시 리버를 본다. 이상한 몸의 경련이나 흥분도 없이 아주 차분해 져서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이 아주 낯설고 또 새로워서 마치 그 여자와 재회하는 감격의 순간에 던져진 사람처럼 말이다. 
"도망갈래요?"
"뭐?"
"탈출해요. 줄리앤에게 가요."
리스가 웃었다.
"넌 역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소설가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러나 언제 자신이 그렇게나 논리적인 인간이었다고. 리버는 속으로 콧방귀를 뀐다.
"가능해요."
"어떻게."
짧지만 순간, 그의 눈이 빛났다. 그가 스스로 그것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이야 말로 그의 재능이었다. 풍뎅이의 등껍질마냥 번뜩이는 눈이었다. 리버가 환영이 아니라 직접 마주하기 까지 몇 개월이 걸린 그 빛.  
"그야 당신은 아주 똑똑하고, 나는 그것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니까."
리버는 불이 너무나 두려워 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이 거대한 화염을 마주하고서나 지을 표정으로 리스를 바라보았다.



*


  리버는 끊임없이 민감해져 가고 있다. 그것은 계속해서 영국에서의 일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명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