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파란눈

글/1 2013. 10. 19. 16:50 |




오후, 하루의 절반이 지나갔다. 오후는 곧 오전을 맞이할 것이다. 오후가 그 자체로서 최고점을 찍는 순간 오전이 된다. 오전이 오전으로서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내딛는 순간 오후가 된다. 우리는 오전을 위해서도, 오후를 위해서도 울어 줄 필요가 없다. 그것이 곧 다시 되돌아 올 것임을 알기때문이 아니라 본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리버는 대학에서 짧게나마 배웠던 것으로, 사실 동아시아에서 배운 것들이지만, 시계를 보며 놀고 있었다. 기준을 1로 옮겼다가 2로 옮겼다, 다시 1과 2 중앙으로 옮겼다. 리버는 심심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있는 놀이에 만족했다.


시계가 울었다. 리버는 완벽한 1/3, 그 정삼각형을 보고 감탄했다. 0시 20분 40초였다.


리버는 어제와 오늘 원 안의 정삼각형을 두 번 보았다. 물론, 본 당시로 따지자면 오늘과 오늘이지만. 처음의 오늘은 오후였다. 오늘을 오늘로 치자면 오늘은 아직 오늘인 것이었다. 그러니 리버는 오후 4시 40초도 오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리버는 오늘 오후에 모니카와 함께 있었다. 그 시계를 보는 순간에 모니카는 막 하품을 마쳤는데 리버는 파란 쟁반 위에서 움직이는 차가운 바늘들을 보는데 너무나 열중해 있었기에 모니카의 모습이 희미했다. 


모니카는 하품을 정리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소리를 냈다. 시계에서 새어나오는 일련의 움직임이 그 순간 산산조각 났다. 덕분에 리버는 모니카와 마주 앉아 있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었다.
"이름이...?"
모니카는 꽤 조심스러운 양반이었다. 리버와 모니카는 트위터로 대화를 하긴 했지만 서로의 이름을 아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모니카는 리버의 이름을 몰랐다. 하지만 그건 리버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은요?"
리버는 자신의 마음이 내킬 때를 제외하고는 뭐든지 쉽게 내주는 법이 없다.
"모니카에요."
"모니카? 내가 아는 모니카와는 꽤 다르네요."
"다른 모니카를 알아요?"
"네 알죠. 비록 TV시리즈의 모니카지만."
"아... 제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서요."
"저도 아니에요."
"네, 알아요. 발음이 미국인은 아니니까요."
리버는 숨을 짧게 몰아 쉬고 계속해서 쳐지는 이 대화를 어떻게 끊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프렌즈에 나오는 모니카도 재밌어요. 한 번 보세요."
물론 별 소득은 없었다.
"다음에요. 그래서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머그 그레이, 편한대로 불러요."


그리고 드디어 대화가 일단락됐다. 리버가 모니카 앞에 어떠한 형용사를 붙였든지간에 그를 양반이라고 칭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가 직접 구운 쿠키와 커피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일종의 습관이라고 하더라도 감사한 일이다. 리버는 그가 가져온 것 중에서 가장 얇고 가장 덜 달달해 보이는 쿠키를 하나 집어 물었다. 탁, 하고 앞니에서 부스러져 사방으로 과자 가루가 튀었다. 


"그레이 씨는 침묵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모니카의 기습 질문이었다. 어쩌면 다시금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용기일 수도 있었다. 지금 리버가 답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제외하면 새로운 이야기의 장을 열었을 수도 있었다. 리버는 손을 들어 올려 답을 기다리는 그를 달래듯 제재했다. 그리고 다시 오물거리고 있는 자신의 입을 가리킴으로써 모든 의사를 전달한다. 모니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자는 입 안에서 잘게 부서졌고 커피로도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흔적을 입 안 가득 남겼다. 리버는 두 어모금 더 커피를 마신 후에 말을 할 수 있었다.
"침묵이요?"
"네."
"침묵의 불편함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하자면 불편하지 않다는 거네요."


다시 대화가 끊겼다. 모니카는 리버의 대답에 고개를 흔들었을 뿐이다. 리버의 커피가 바닥났을즈음 모니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에 리버는 그가 초능력이라고 가진 줄 알았다. 컵을 꿰뚫어 보고서는 커피를 더 가져오나 싶었으나 그는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깊숙히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모니카는 리버가 사놓은 음반들을 구경했다.
"클래식만 들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왜...                                                    ?"
        내가 클래식만 들을 줄 알았던 거예요     하지만 꼬리를 물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
"연주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냥 실력은 아니던데, 어쩌면 제가 그저 막귀인 걸 수도 있죠."


삡삐-삡삐-삡삐-삡삐- 삐익-


1시다. 리버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마치 자다 막 일어난 사람 처럼 모든 것이 희미했다. 뿌옇다. 그간 누워서 무엇을 했는지 또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리버는 잠을 자는 것과 그저 누워 있었던 것에 무슨 큰 차이가 있는 건지 고민한다. 잠은 그저 꿈 속에 들어 갔다 나오는 것 같았다. 잠을 잔다고 해서 피곤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리버는 늘 꿈을 꿨다. 오늘 있었던 오후를 회상함이 꿈이 아닐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리는 계속해서 가고 있다. 앞으로, 앞으로. 그녀 방 벽에 붙어 강렬하게 빛나는 푸른 시계, 꼭 마법에 걸린 것 같은 눈동자다. 그래서 그 아래에서는 무엇을 하든 꼭 이 세상을 그저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모니카가 그런 질문을 한 것이고 리버 또한 뭣도 모르고 걸려든 것이다. "실은 원래 피아니스트였어요." 하고.




키워드 : '파란색. 침전. 희미.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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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란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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