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WB. BM
누가 나를 보고 ‘밤처럼 차려 입었다.’ 라고 하더군요. 난 물었죠. ‘밤처럼?’ 꼭 어디 파티에서 도망쳐 온 것 같구먼. 난 맞아요, 도망인지는 몰라도 몰래 빠져나오긴 했죠. 그렇게 답했어요. 안쓰러웠는지 숄을 건네주더라고요. 끝자락에 맥주가 묻어 있었죠. 괜찮다고는 했지만 추워 보인다더군요. 그래서 추워 보이는 건 당신이 춥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재빨리 빠져나와 날았어요. 아가씨, 하고 따라 나왔던 거 같은데, 자신이 했던 말 속에 나오는, 밤처럼 차려입은 여자는 볼 수 없었겠죠. 오직 밤만이 그 사람을 맞이했을 거예요.
알아요. 쓸데없는 이야기라는 걸.
혹시 래번클로 기숙사에서 쪽지를 발견했던가요? 뭐, 언젠가, 후배가 찾아내겠죠. 지금 찾아냈다고 해도 그 쪽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만한, 가령 누군가의 죽음이라든가 하는, 사건이 생기는 건 꽤 시간이 지난 후일 테니까요. ‘곧’은 다 다른 거잖아요.
이것도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죠. 난 그냥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한껏 온몸으로 생각이 차올랐다가도 막상 소리 내어 말을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모두 쏟아내고 갈 수 있도록...
말했듯이 나는 기숙사 휴게실에 쪽지를 두고 갔어요. 학교에 더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있을 수도 없었고요. 꿈이라고 한다면, 꾸는 자가 하나쯤은 있어야지요. 난 죽지 않았었잖아요. 기억해요? 아, 인간의 형태는 더 이상 소용이 없어요. 꿈이죠. 꿈이라는 경계가 없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죠. 호그와트도 그렇고. 그래서 그냥 새가 되어 이곳저곳 다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죽게 되겠죠. 알다시피 슬픈 이야기는 아니죠. 난 너무 궁금해서 나도 모르는 새에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보게 될까봐서 두려웠으니까요. 애니마구스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괜찮아졌지만 그 충동과 충동이 가져오는 불안의 기억마저 지워버릴 순 없죠. 그러니 차라리 이렇게 되는 것이 나아요. 만약 죽어볼 수 있다면 진즉에 죽어봤을 거예요. 결코 ‘진짜’죽음은 되지 못했겠지만, 어찌되든 그 결말은 장례겠죠. 쪽지는 그런 것이에요.
음... 우린 밖에서 대화를 참 하지 않았죠. 하지만 보고는 있었어요. 물론 누가 그쪽을 그저 흘려보냈을까요? 워낙 눈에 띄니까요. 난... 그래, 봤어요. 하지만 이목을 끄는 그 가면을 봤던 건 아니에요. 시끄러운 말들을 본 것도 아니고. 난 궁금했어요. 알고 싶었고, 그래서 지켜본 거예요. 그래서 나는 당장에 말할 수 있었던 거죠. 미결의 존재라고.
가득찬 손짓, 넘치는 말들, 반딧불이의 꽁무니처럼 깜빡이는 가면의 표정, 오른쪽이었다가 금방 왼쪽으로 돌아서고,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금방 뒤로 빠지고... 결코 종잡을 수 없죠. 난 그걸 보면서 하나를 주장하지 않는 것을 지속적으로 외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엇 하면 당신을 떠올리도록 놔두지 않았죠. 검지도 희지도 않아서 정체가 뭔지 모르도록.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 모두가 아닌 것이 당신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최소한, 아니고자 하는 것이 당신이라고. 어느 하나로 정의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 하지만 그쪽은 모든 속내를 가림으로써 감추는 존재가 되고 말았죠. 그리하기를 선택한... 자. 아아.. 이건 그저... 중요한 말들이 아니에요. 난 미결의 존재라고 말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말을 길게 했을 뿐이죠.
우리들이 초대받은 방. 나는 그곳에 의자가 총 다섯 개 있었다고 생각해요. 모런, 나, 당신, 루시엔 그리고 우리를 그 자리에 있게 한 어떤 것, 어디서는 운명, 모이라 혹은 카르마 또는 유전과 환경의 조화 등등... 무엇이 되었든 우리 넷을 자리하게 한 뭔가가 앉을 곳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냈겠죠? 하지만 우린 그 방에 자리할 수 있었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만약 정말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면 그때 그게 우리들이라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죽었던 이들에게 좋은 말은 아니지만, 당신과 저도 살고자하는 이들만큼 분명한 뭔가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뜬금없게도, 그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나는 그랬어요. 아주 가끔씩 돌진하여 먼저 말을 걸기도 하지만 아닐 때, 나는 관심이 있어서 보고만 있을 때가 있거든요. 당장에 쟁취하기 위해 달려가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죠. 그리고... ... 이건 나중에 얘기하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남기고 날아갔다 다시 이렇게 찾아오게 된 이유를 말하고 싶어요. 난 날아서, 여기 저기 마을을 돌고 있었어요. 교복은 벗은 것이 오래라, 검은 원피스를 입고 다닐 때였죠. 밤처럼 차려 입었다는 말과 호의로부터 벗어나려 한 날, 난 기억해냈어요. 어떤 얼굴을 하나가 떠올랐죠. 그런데 난 그 얼굴을 몰라요. 처음 보는 낯. 그 얼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어디를 가도 따라오고 꿈에서도 튀어나와 내 온 정신을 빨아들이고 일어나서도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내 하루를 잡아먹었죠. 난 그 얼굴, 손짓에 갇혀서... 어디 한 곳에 내 신호가 잡혀버린 것처럼 똑같은 정보만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난 그건 알고 있었어요. 내가 막 호그와트에 입학했을 때 같은 학교를 다니던 남자아이의 우산을 계속해서 떠올렸던 적이 있거든요. 하나의 이미지, 장면, 있지도 않았던 향기, 색감, 움직임. 그걸 떠올리고 몇 개월 후에 그 아이를 좋아했음을 깨달았던 때와 같았죠. 이번에도 역시나 늦었지만, 이전보다는 빨랐어요. 문제는, 그 얼굴이 누구인가.
얼굴, 나는 결국 알아냈어요. 그리하여 이윽고 선택할 수 있었죠. 그냥 지나쳐 죽음의 여정을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밝힐 것인지. 처음에 난 그저 가려고 했죠. 나에게 있어서 좋아한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기에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네, 그렇죠. 좋아하는 것은 나의 마음일 뿐이고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아는 부분인 거죠. 그런데 문득, 내가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죽이러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난 죽음이 도피가 되는 건 싫었어요. 특히 마음의 도피 말이죠. 그래서 돌아온 거예요. 그 얼굴에게로. 오, 이런 모르겠나요? 당신이에요. 첸 린.
난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본 적도, 볼 일도 없겠죠, 아마. 그런데 얼굴이었어요. 초상화를 그려내라면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나타나는, 정해지는 이목구비의 색과 모양새가 아니라 한 존재의 인상 같은 얼굴. 그건 당신이었어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모든 것들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내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애초에 더 빨리 알았다고 했어도 뭐가 달라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난 알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라요. 당신에게 질문 했을 때 말이죠. 말들을 듣고, 그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묻고, 입에 이름 올리기를 꺼렸을 때부터.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려보려고 했던 것도. 아니, 그저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서라도, 그냥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시점에서부터 내게는 그쪽이 있었던 거예요. 나는 그냥... 아. 난 그저 야생화에 대해 알고 싶어 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펼치는 것처럼 서 있을 뿐이었던 거죠.
그냥 그런 거예요. 그냥 우리가 대화를 굳이 나누지 않았어도 좋은 건 좋았던 거죠. 그래서 나는 그쪽이 죽어야만 하겠다고 하면 뱃사공에게 줄 동전을 건네고, 가야만 한다면 문 앞을 비켜서고,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죠. 내 마음의 여부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어떤 영향도 주고 싶지 않아서 또, 그게 당신의 선택이자 곧 첸 린이고 난 그냥 그게 좋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선언하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노라고. 린, 당신이 무어라 말할 것이든 나의 마음은 이렇고 그걸 전하고 싶었다고.
*
그녀는 꼭 화난 사람처럼 말을 하다가 무엇이 우스운지 웃음을 터뜨린다.
“아, 아무래도 린, 당신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공백제외 2946 자.
BGM은 Ribs(Lorde)